이동진의 빨간 책방 53회
<염소는 힘이 세다> 김승옥, 1966
사진 출처 중앙일보
이동진
"'염소는 힘이 세다'는 창작의 동력을 제공하는,
시퀀스를 견인하는 마스터숏 같은 문장이다.
12살 화자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하나도 논리적이지 않은 문장이지만
이 아이의 마음 속에서는
진리인 것이다.
집은 힘이 없다는 대전제가 중요하다.
우리집의 할머니, 누나, 장독대, 대문도 힘이 없다.
집이 불우하고 가난하고 척박하다 보니
세상의 힘의 기준을 집 안팎으로 구분한다."
김중혁
"이 한 문장의 말이 울타리를 만들어 집 안팎을 구분하고,
아이가 느끼는 처연함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염소가 죽는 순간까지도
힘이 세었던 것을 보았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아저씨는 우리 집에 살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아저씨는 힘이 세었다.
폭풍이 부는 밤이면 우리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버리고 싶다는 듯이
쿵쾅 소리를 내며 날뛰는
우리집의 양철지붕도 힘이 세지 않았고
집앞 한길에 교외도로포장공사장으로 가는
불도저가 지나갈 때면
덜덜덜 떨고 있는 우리집의 썩어가는 판자담과
판자로 된 쪽대문도 힘이 세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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